소설을 좋아한다고 자부하지만 어떤 소설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다. 대중이 없기 때문인데, 몇몇 작가의 전작을 훑기도 하고, 꼭 읽어야 할 것처럼 온갖데서 협박했던 고전들을 가까스로 읽거나 읽다가 포기하고, 일본소설을 뒤적이는가 하면 배수아나 은희경 같은 사람의 차기작을 기다린다.
오랜만에 나온 책인데 그 반대로 단숨에 읽어버렸다. 단편은 뭐랄까 경향을 말하긴 어렵고 기껏해야 좋았어, 나빴어 그정도인데 이번 소설도 언제나처럼 좋았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나의 점수 : ★★★★
사은품으로 준 단편 한꼭지를 녹음한 오디오북, 생각보다 들을만했다.
"다시 말씀드리죠. 인간이 가진 오감과 뇌의 용량을 생각해보세요. 의식하든 못하든 우리가 일상에서 제공받는 정보는엄청난양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는 것을 모두 기억한다면 삶을 통제할 수가없겠죠.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사고회로에 적합한 것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기억의 질서예요.일종의판단매뉴얼인 셈이죠. 그런데 그 매뉴얼이 극히 주관적이고 부분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어요. 매뉴얼로 해석할 수 없는 일이일어났을때 인간은 대개 우연이라는 말로 뭉뚱그려버리지만, 사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법이에요. 그인과관계를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기존 매뉴얼의 질서에 적합하지 않아 누락되어 있었던 것뿐이죠." - 의심을 찬양함, p.13
규칙에 의한 분석과 예측이 있기 때문에 일기예보나 교통정보, 마케팅, 범죄수사 같은 게 가능해져요. 예술은 사람들이 사고하는일정한패턴을 배반함으로써 긴장을 만들어냅니다. 모두가 예상하는 패턴과 어긋날 때에 농담이 성립될 수 있듯이 말이죠. - 의심을찬양함,p.20
이 세상에 나는 여러 개로 흩어져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 살고 있어요. 그것들은 서로 몹시 달라요. 화를잘 내는 나도 있고수줍은 나도 있고 말 잘하는 나도, 어리석은 나도, 그리고 아름다운 나도 혐오스러운 나도 다 있어요. 그것들은흩어져 존재하지만어느 한순간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면 갑자기 사람들의 눈에 띄게 돼요. 외롭다는 생각 같은 것 말이에요. 그러면사람들은 내게와서 말하죠. 어제 시장에서 욕설을 퍼부으며 물건값을 깎고 있는 천박한 너를 보았어. 어제 극장의 로얄석에서 눈물을흘리며오페라를 감상하는 우아한 너를 보았어. 비닐하우스 안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오이를 따는 늙은 너를 보았어. 챙 넓은 모자를쓰고공원 벤치에서 책을 읽는 평화로운 너를 보았어. 남자에게 맞아 피투성이가 된 채 울며 뒤쫓아가는 미친 너를 보았어.그러나사람들은 그런 일을 곧 잊어요. 세상에는 닮은 사람들이 많은 법이고 그리고 한사람이 동시에 여러 장소에 나타나는 일은절대로있을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죠. - 고독의 발견, p.59
그 여행계획에 대해 나만 빼고 모두가 이미 알고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 그랬던 걸까. 그때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언제부터인가내 곁에서 나만 모르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다.언제부터일까. 나는 언제부터 이들 사이에서 제외되어 있었을까. - 고독의 발견,p.63
글쎄요. 사람들은 순종적인대상에게 오히려 가학적이 되기도 하니까요. 잘해주면 짓밟고 싶어질 때가 있죠. 상대가 무슨 말을 듣기원하는 줄 너무나 잘알면서도 끝까지 그 말만은 하기 싫은 어긋남 같은 거요. - 고독의 발견, p.65
그때까지 나는 내가 남의 눈에어떤 사람으로 비칠는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누구인가 따위의 질문은 일종의 사춘기적인잡념이라고 치부해왔고 아니면흥밋거리로 만든 성격테스트 문항 정도로만 여겼다. S의 눈물에 마음이 아팠던 것은 그녀를실망시켜서가 아니었다. 내가 남의 눈에비친 바로 그대로의 사람이라는 사실과 그렇게 정해진 대로 거기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악몽을 자주 꾸게된 것은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 고독의 발견, p.68
유년 이래 내가 뚱뚱한 사람으로 살아온 시간이 결코짧은 건 아니었다.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인간의 자기애는 아무리 열악한것이라 해도 주어진 조건에 자신을 적응시킬 수 있으며 그삶을 합리화하게 마련이다. -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p.83
나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일반적인 다수가 아니라 나에게 중요한 어떤 사람들이다. -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p.87
인터넷으로 주문한 체중계가 다음날 도착했다. 남들이 생각하듯 뚱뚱한 사람의 불편은 계단을 올라가기 힘들다거나 식비가 많이드는데에만 있지 않다. 남의 눈에 띄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 오히려 훨씬 더 불편하다. 독신자가 마음놓고리얼돌(real doll)을 구입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뚱뚱한 사람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빅 싸이즈의 옷이나체중계같은 걸 고를 수 있다는 것은 인터넷쇼핑의 중요한 장점이었다. -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p.91
어머니가혼잣말로 하는 대화를 시작했다. 늙으면 먹는 모습이 추해진다는 말이 있어. 어느 누가 추한 걸 자꾸 보려고 하겠니.먹을 것을뺏어야 할 때가 온 거지. 죽을 때가 된 거야. 사람이 정을 뗄 때도 그런다더라. 정이 식으면 먹는 모습이 제일 보기싫어진단다.먹을 것을 뺏고 싶은 심정, 그거 죽으라는 소리 아니겠냐. 먹는 것만큼 치사한 것도 없어. 좋아지는 마음도 다 먹을때에 생겨나고살가운 정도 한밥상에서 나오는 거란다. -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p.103
하지만 이제는 나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삶은 그런 식으로 비루하게 이어지는 거고, 우리는 아버지들의 위선 속에 세상을 배우는 거잖아. -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p.108
미분화된 현대인의 삶이란 어차피 지엽단말적인 기능을 담당할 뿐이다. 인류의 미래 따위를 걱정하는 철학적이거나 양심적인 직업은 담당자가 따로 있다. - 지도 중독, p.152
야생동물한테 먹이를 주면 안돼. 스스로 먹이를 찾지 않고 점점 남의 것을 뺏으려 하거든. 아니면 구걸을 하거나. 훈련된 곰을야생에풀어놔봐. 적응을 못하고 먹이를 얻기 위해서 등산객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놈이 반드시 나오지. 인간이든 곰이든마찬가지야. 친구가되려고 하면 안돼. 타인으로 대하는 게 서로 살아남는 길이야. - 지도중독, p.180
오랜만에 나온 책인데 그 반대로 단숨에 읽어버렸다. 단편은 뭐랄까 경향을 말하긴 어렵고 기껏해야 좋았어, 나빴어 그정도인데 이번 소설도 언제나처럼 좋았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은희경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나의 점수 : ★★★★
사은품으로 준 단편 한꼭지를 녹음한 오디오북, 생각보다 들을만했다.
"다시 말씀드리죠. 인간이 가진 오감과 뇌의 용량을 생각해보세요. 의식하든 못하든 우리가 일상에서 제공받는 정보는엄청난양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는 것을 모두 기억한다면 삶을 통제할 수가없겠죠.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사고회로에 적합한 것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기억의 질서예요.일종의판단매뉴얼인 셈이죠. 그런데 그 매뉴얼이 극히 주관적이고 부분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어요. 매뉴얼로 해석할 수 없는 일이일어났을때 인간은 대개 우연이라는 말로 뭉뚱그려버리지만, 사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법이에요. 그인과관계를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기존 매뉴얼의 질서에 적합하지 않아 누락되어 있었던 것뿐이죠." - 의심을 찬양함, p.13
규칙에 의한 분석과 예측이 있기 때문에 일기예보나 교통정보, 마케팅, 범죄수사 같은 게 가능해져요. 예술은 사람들이 사고하는일정한패턴을 배반함으로써 긴장을 만들어냅니다. 모두가 예상하는 패턴과 어긋날 때에 농담이 성립될 수 있듯이 말이죠. - 의심을찬양함,p.20
이 세상에 나는 여러 개로 흩어져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 살고 있어요. 그것들은 서로 몹시 달라요. 화를잘 내는 나도 있고수줍은 나도 있고 말 잘하는 나도, 어리석은 나도, 그리고 아름다운 나도 혐오스러운 나도 다 있어요. 그것들은흩어져 존재하지만어느 한순간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면 갑자기 사람들의 눈에 띄게 돼요. 외롭다는 생각 같은 것 말이에요. 그러면사람들은 내게와서 말하죠. 어제 시장에서 욕설을 퍼부으며 물건값을 깎고 있는 천박한 너를 보았어. 어제 극장의 로얄석에서 눈물을흘리며오페라를 감상하는 우아한 너를 보았어. 비닐하우스 안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오이를 따는 늙은 너를 보았어. 챙 넓은 모자를쓰고공원 벤치에서 책을 읽는 평화로운 너를 보았어. 남자에게 맞아 피투성이가 된 채 울며 뒤쫓아가는 미친 너를 보았어.그러나사람들은 그런 일을 곧 잊어요. 세상에는 닮은 사람들이 많은 법이고 그리고 한사람이 동시에 여러 장소에 나타나는 일은절대로있을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죠. - 고독의 발견, p.59
그 여행계획에 대해 나만 빼고 모두가 이미 알고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 그랬던 걸까. 그때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언제부터인가내 곁에서 나만 모르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다.언제부터일까. 나는 언제부터 이들 사이에서 제외되어 있었을까. - 고독의 발견,p.63
글쎄요. 사람들은 순종적인대상에게 오히려 가학적이 되기도 하니까요. 잘해주면 짓밟고 싶어질 때가 있죠. 상대가 무슨 말을 듣기원하는 줄 너무나 잘알면서도 끝까지 그 말만은 하기 싫은 어긋남 같은 거요. - 고독의 발견, p.65
그때까지 나는 내가 남의 눈에어떤 사람으로 비칠는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누구인가 따위의 질문은 일종의 사춘기적인잡념이라고 치부해왔고 아니면흥밋거리로 만든 성격테스트 문항 정도로만 여겼다. S의 눈물에 마음이 아팠던 것은 그녀를실망시켜서가 아니었다. 내가 남의 눈에비친 바로 그대로의 사람이라는 사실과 그렇게 정해진 대로 거기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악몽을 자주 꾸게된 것은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 고독의 발견, p.68
유년 이래 내가 뚱뚱한 사람으로 살아온 시간이 결코짧은 건 아니었다.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인간의 자기애는 아무리 열악한것이라 해도 주어진 조건에 자신을 적응시킬 수 있으며 그삶을 합리화하게 마련이다. -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p.83
나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일반적인 다수가 아니라 나에게 중요한 어떤 사람들이다. -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p.87
인터넷으로 주문한 체중계가 다음날 도착했다. 남들이 생각하듯 뚱뚱한 사람의 불편은 계단을 올라가기 힘들다거나 식비가 많이드는데에만 있지 않다. 남의 눈에 띄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 오히려 훨씬 더 불편하다. 독신자가 마음놓고리얼돌(real doll)을 구입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뚱뚱한 사람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빅 싸이즈의 옷이나체중계같은 걸 고를 수 있다는 것은 인터넷쇼핑의 중요한 장점이었다. -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p.91
어머니가혼잣말로 하는 대화를 시작했다. 늙으면 먹는 모습이 추해진다는 말이 있어. 어느 누가 추한 걸 자꾸 보려고 하겠니.먹을 것을뺏어야 할 때가 온 거지. 죽을 때가 된 거야. 사람이 정을 뗄 때도 그런다더라. 정이 식으면 먹는 모습이 제일 보기싫어진단다.먹을 것을 뺏고 싶은 심정, 그거 죽으라는 소리 아니겠냐. 먹는 것만큼 치사한 것도 없어. 좋아지는 마음도 다 먹을때에 생겨나고살가운 정도 한밥상에서 나오는 거란다. -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p.103
하지만 이제는 나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삶은 그런 식으로 비루하게 이어지는 거고, 우리는 아버지들의 위선 속에 세상을 배우는 거잖아. -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p.108
미분화된 현대인의 삶이란 어차피 지엽단말적인 기능을 담당할 뿐이다. 인류의 미래 따위를 걱정하는 철학적이거나 양심적인 직업은 담당자가 따로 있다. - 지도 중독, p.152
야생동물한테 먹이를 주면 안돼. 스스로 먹이를 찾지 않고 점점 남의 것을 뺏으려 하거든. 아니면 구걸을 하거나. 훈련된 곰을야생에풀어놔봐. 적응을 못하고 먹이를 얻기 위해서 등산객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놈이 반드시 나오지. 인간이든 곰이든마찬가지야. 친구가되려고 하면 안돼. 타인으로 대하는 게 서로 살아남는 길이야. - 지도중독, p.180

![[수입] DG 111주년 기념반 [55CD]](http://image.aladdin.co.kr/coveretc/music/coveroff/8947781673_2.jpg)















덧글
버트 2007/05/02 15:05 # 삭제 답글
틸에게 빌려 봐야지.
yuna 2007/05/14 15:16 # 삭제 답글
가끔 배수아와 은희경이 헛갈려서...왜 그런지 모르겠어요